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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해체해 본 나라 딱 3곳…추격자 한국, '492조 시장'서 성공하려면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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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해체해 본 나라 딱 3곳…추격자 한국, '492조 시장'서 성공하려면

사계 5 2025. 1. 1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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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한국원자력환경공단>


 

인류는 에너지원으로 원자력을 택했고 원자력은 에너지 그 이상의 선물을 줬다. 그 선물은 공짜가 아니다. 원자력은 발전과 동시에 중대한 숙제를 남긴다.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은 몸을 태운 원자력의 유해이자 관리해야 할 유산이다. 인류는 이땅에서 수백~수천년을 그 유산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

마냥 넋 놓고 기다린다고, 세월이 해결해줄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연구와 기술 개발, 안전한 시설, 사회적 합의 등 긴호흡 속 철저한 준비가 절실하다. 아직 첫발조차 떼지 못한 우리나라에게 원전 선진국의 행보는 참고할 만하다. 프랑스와 스위스는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처리의 선도적 국가이자 각국만의 접근법을 통해 미래를 준비해가고 있다.


#프랑스의 초록 들판을 달려 휑한 곳에 다다른다. 프랑스 파리 동쪽 230㎞에 위치한 작은 마을 뷔르(Bure). 단층 건물들이 띄엄띄엄 서 있다. 조용한 시골 구석에 위치한 곤충 또는 식물 연구소 느낌이다. 경계도 생각보다 삼엄하지 않다. 국내 원자력발전소 방문 과정에 비하면 사실상 무사통과다.

아주 간단한 안전 교육 후 현장 방문이다. 아무리 지하 공사판이라지만 밖에서 확인 불가라는 게 신기하다. 지상은 초원 그 자체다. 원통형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간다. 지하 500m. 지상 높이라면 무서울텐데 땅 속이니 감도 없다. 펼쳐진 풍경은 잘 짜여진 지하 미로다. 언뜻 지하철 건설 현장처럼 보이는데 단단하고 묵직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프랑스 방사성폐기물 관리청(ANDRA) 주도로 진행중인 '시제오(Cigeo)' 프로젝트.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을 영구적으로 매립하기 위한 시설 건설 계획이다. 100년 이상 에너지 걱정, 안전 걱정 없이 살도록 하겠다는 프랑스 정부의 야심과 국민들의 포부가 함께 담겨 있다. 지하에 도착하자, 점토층으로 이루어진 터널이 끝없이 펼쳐졌다.

가로 5㎞×세로 3㎞ 규모의 시설 건설이 마무리되면 사용후핵연료(폐연료봉) 보관 장소가 될 터널들이다. 점토는 물과 방사성 물질의 이동을 거의 차단하는 특성을 가진다. 이곳이 고준위 방폐장 부지로 선정된 이유다. 작업 환경은 조용하고 질서 정연했지만 그 속에는 수십 년간 축적된 기술과 노력이 응축돼 있었다. 엔지니어들은 작업이 중단되지 않도록 쉼 없이 움직였다. 그들의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터널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미래 세대를 위한 안전 보장의 출발점이었다.

장프랑수아 현장 건설 관계자는 "이곳은 최소 10만 년 이상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며 "100년간의 모니터링 후 시설이 영구적으로 폐쇄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프랑스는 원자력 발전 비중이 높아 방사성폐기물 처리가 필수적이다. Cigeo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과학적, 기술적 성과의 결정체"라고 강조했다.

<사진 : 한국원자력환경공단>


 

# 스위스에서 접한 분위기는 또 다르다. 원전이 전체 전략 생산의 38%를 담당할 만큼 스위스에서 원자력은 핵심에너지원이다. 스위스는 50년전부터 방사성 폐기물 처리를 준비해왔다. 원전을 고민하면서 모두가 건설에만 주목할 때 폐기물 처리까지 염두에 뒀다는 의미다. 실제 1969년 원전의 상업 운영 가동 직후 1972년 방사성폐기물관리기관인 나그라(NAGRA)를 출범시키며 방폐장 건설 준비를 해왔다.

50년의 발걸음은 축적의 시간이다. 기술적으로는 지질학적 안정성을 연구한다. 나그라는 지질학적 안정성을 평가하기 위해 광범위한 현장 조사와 파일럿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이상적 지질 환경을 찾아냈다. 적합한 환경과 부지를 찾은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스위스는 과학적 연구와 사회적 합의를 동시에 추구했다.

패트릭 슈태더 나그라 공공수용성 담당 이사는 "스위스는 기술적 완벽성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의 신뢰를 얻는 것이 성공의 핵심"이라며 "장기적 안전성은 과학뿐 아니라 사회적 합의로 뒷받침된다"고 강조했다. 50년의 과정을 보면 지역사회와 끊임없는 상호 작용이 쌓여 있다. 스위스의 부지 선정 과정이 좋은 예다. 수십 년간의 지질학적 조사와 연구를 통해 취리히 인근 지역이 최종 후보지로 선정됐고 400회 이상의 공청회가 열렸다. 이 과정에서 스위스 국민은 이해 당사자가 아니라 결정의 주체가 됐다. 기술은 안전성을 제공하고 신뢰는 이를 유지하는 기반이 된다는 게 나그라의 설명이다.


#언뜻 프랑스와 스위스의 방식은 달라 보인다. 프랑스는 정부 주도로 첨단 기술을 활용하는 과감함이 두드러진다. 뷔르 현장이 좋은 상징이다. 스위스는 과학적 연구와 함께 주민과 신뢰가 강조된다. 다만 실제론 큰 차이가 없다. 두 나라 모두 방사성폐기물 처리 과정에서 중심에 두는 게 '소통'이다. 과학적 기술과 연구 결과가 아무리 뛰어나도 신뢰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경험적으로 안다. 시작 단계, 아니 그 이전부터 정보를 공유하고 소통한다.

또하나 가장 중심에 둔 게 바로 '안전한 미래'다. 양국 관계자들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가 현재를 넘어 미래에 대한 책임이라는 점을 누차 강조했다. 짧게는 100년 후 세대에게 넘겨주는 '유해'이자 '유산'에 대한 과학과 기술, 합의와 비전 등을 담기 위해 항상 고민한다. 부지 선정을 끝낸 고준위방폐장이 실제 건설된 뒤 그들은 은퇴할 게 뻔하지만 곳곳에 미래를 위한 고민의 숨결을 불어넣는다.

"사용후핵연료, 주민의 눈높이로…설득이 아닌 협력"
 
⑤[인터뷰]패트릭 슈태더 나그라 공공수용성 담당 이사


"설득이 아닌 협력"


스위스 취리히에서 만난 패트릭 슈태더 나그라 공공수용성 담당 이사는 이렇게 말한다. 주민의 반대에 어떻게 대응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근저에는 상대를 존중한다는 신뢰가 깔려 있다. 정부와 의회, 나그라, 주민 등 당사자들이 가진 기본 전제다. 공존하는 협력은 공격적인 설득보다 때론 더디다. 하지만 그 힘은 갈등을 최소화하며 사회를 전진시킨다. 소통의 토대가 되는 그들의 명제는 간단하면서도 명확했다.


◆Experts must meet laymen at eye level.(전문가는 주민들의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


☞눈높이의 중요성이다. 전문가의 전문성만 강조하면 강제가 된다. 눈높이를 맞추면 협력의 기초가 마련된다. 주민들이 왜 겁을 내는지를 파악하는 게 먼저다. 기술인지, 심리인지 등을 알아야 한다.


◆A societal debate is an opportunity, not a threat.(사회적 논쟁은 위협이 아니라 기회다)


☞사회적 대화와 소통은 필수다. 대화와 토론은 물론 주민을 직접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면 안 된다. 두려워하지 말고 사회적으로 대화해야 한다.


◆Criticism makes our project better, critics are not enemies.(비판은 우리 프로젝트를 더 좋게 만든다. 비평가들은 적이 아니다)


☞비판을 흘려듣는 경우가 적잖다. 뻔한 얘기로 치분하기도 한다. 하지만 비판을 듣다보면 배울 게 있다. '굿 아이디어'라고 외친 사례도 있다.


◆We do not talk about transparency. We are transparent.(우리는 투명성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투명하다)


☞스위스 관계자들의 자세다. 투명성을 강조하다보면 투명성 논쟁에 빠진다. 그들은 투명하다는 자세로 설명하고 비판을 청취한다. 그 배경엔 이 원칙이 있다. "우리 모든 것을 공개한다(We publish everything).

 
'492조' 원전해체 시장 잡아라..."긴 여정에 흔들림 없는 정책 필수"

⑥미래 먹거리 시장 '원전해체'


"원전해체 긴 여정, 모두 함께 갑시다."


지난해 11월25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 호텔에 우리나라 원자력발전(원전) 해체 전문가 200명이 모여 외친 다짐이다. 이들은 국내 원전해체 준비 현황을 점검하고 국내·외 기술개발 동향에 대해 논의했다. 또 기술과 시장, 인프라 분야별 원전해체 사업의 추진 현황과 향후 계획을 집중 검했다.

원전의 운전 허가가 종료되고 수명 연장을 하지 않거나 운전 중이라도 경제성(가동비용)과 환경문제 등으로 폐기가 결정되면 원전을 허물고 원자로를 폐기해야하는 데 이를 '원전해체'라고 한다.

우리나라 원전해체 시장 규모는 총 26조원(30기 기준)으로 추정된다. 현재 국내 영구정지 원전 2기(고리1호기, 월성1호기)는 해체승인 신청 완료 및 원자력안전위원회 인허가 심사 중이다.

글로벌 원전해체 시장에서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국내 기술의 현장적용실적(Track-Record) 확보가 필수적이다. 고리1호기(경수로)는 2025년 상반기에 해체 승인이 날 것으로 보이고, 월성1호기(중수로)는 2027년 승인을 받을 전망이다.

고리 1호기의 사용후 핵연료 반출은 2030년경 건식저장시설 준공 이후, 월성 1호기는 2025년 중 건식저장시설(맥스터)로 사용후 핵연료 반출완료 예정이다.

1978년 상업운전을 시작한 고리1호기는 40년만인 지난 2017년 영구정지 판정을 받고 해체의 길로 들어섰다. 해체엔 15년 이상 걸릴 전망이다.

월성1호기 역시 1984년 이후 35년간 운영된 후 해체될 예정인데 마찬가지로 해체엔 십수년이 걸린다. 원전해체는 여러 정권에 걸쳐 진행되는 프로젝트란 얘기다. 긴 안목으로 흔들림 없는 정책이 원전해체 시장을 키울 수 있다.

자료: 에너지경제연구원


전 세계 원전해체 시장으로 눈을 돌리면 더욱 그렇다. 글로벌 원전해체 시장 규모는 지난해 기준 약 492조원으로 추정된다. 각 나라가 추가적으로 계속 운전을 시행하지 않는다면 현재 성장 중인 글로벌 해체 시장은 2040년대에 정점을 이룰 전망이다. 이후 계속운전 여부에 따라 원전 해체시장은 더욱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해외 원전해체 시장의 추이를 파악하기 위해 각국의 계속운전 추이를 지속적으로 추적 관찰하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정권에 따라 원전 정책이 매번 뒤바뀌면 이 시장의 흐름을 놓치기 쉽다.

2024년 9월 기준으로 전 세계적으로 영구정지 원전은 211기, 운영원전은 415기다. 2050년까지 270기 원전이 추가로 영구정지 예상된다. 해체 준비중인 원전도 89기에 달한다. 현재 신규 건설 중인 원전 57기까지 고려하면 추후 해체 물량은 지속적으로 발생할 전망이다.

현재 원전해체 경험을 보유한 나라는 미국(17기), 독일(4기), 일본(1기) 등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권에 따라 원전해체 기술개발에 차질이 생기거나 다른 나라와 기술격차 확대로 해체시장 진출 기회를 잃을 수 있다.

이호현 산업부 에너지정책실장은 "전 세계 원전해체 시장은 로봇과 디지털트윈, 신소재 등 첨단기술이 융복합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며 "세계적인 원전산업 역량을 토대로 원전해체 기술력을 확보해 국내 원전해체에 대비하고 글로벌 시장을 주도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해외 선진국과 비교하면 우리나라는 해체기술 실·검증 인프라가 부족한 게 현실이다. 선행 핵주기 분야(설계-건설-운영 등)에 집중된 원전산업 생태계의 경쟁력을 후행 핵주기 분야(해체-폐기물 관리 등)로 확대해 'K-원전'의 전주기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정부도 지난해 말 한국원자력환경복원연구원을 설립해 원전해체 시장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이곳은 국내 원전 해체산업의 종합 플랫폼으로서 원전해체산업 육성과 중소기업 지원의 핵심 거점 역할을 수행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원전해체 기술을 실증해 고도화하고, 해체 폐기물의 방사능 핵종과 농도를 분석한다. 관련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안전하고 효율적인 원전해체를 지원할 계획이다.

최남호 산업부 2차관은 "지속 가능한 원전산업 생태계를 위해 원전해체와 사용후핵연료 관리 등 후행주기 기술 확보가 필요하다"며 "원전 해체기술 사업화와 전문인력 양성을 통해 글로벌 원전해체 기술 선도국으로 도약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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