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100년간 벌 수 있는 돈 수백조원…눈총 받던 원전, 금맥됐다

사계 5 2025. 1. 13. 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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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뉴스1>




원자력 발전(원전). 기구한 팔자다. '탈(脫)원전' '복(復)원전' 등을 거치며 세상 풍파를 겪었다. 그 과정에서 대립과 갈등의 상징이 됐다. 하지만 그 자체가 과거다. 이분법은 편하지만 재미없다. 현상을 설명하지도, 해법을 제시하지도 못한다.

시대가 달라졌다. 기후 변화, 에너지 자원 고갈 등만 갖고 논쟁하던 때가 아니다. 기술의 진보는 무의미하고 소모적인 논쟁에서 원전을 끄집어냈다. AI(인공지능) 기술 진보와 우주 개발로 상상할 수 없는 에너지가 필요해졌다. 반도체·자동차·철강 등 제조업을 뒷받침할 전력은 비할 바가 안 된다.

빅테크는 에너지를 빨아먹고 산다. 그 양은 상상 이상이다. 급증하는 글로벌 전력 수요를 맞출 수 있는 에너지원은 현재 원전뿐이다. 비화석 연료로 탄소 문제에서도 자유롭다. 환경 때문에 터부시됐던 원전이, 환경을 위한 에너지원이 됐다. 원전은 이제 위험한 에너지가 아니라 빅테크 에너지원이다. 원전의 서사는 전환됐다.

원전의 삶은 매우 길다. 한평생을 살아도 원전 수주부터 해체까지 목격할 수 없다. 수주(10년)·건설(10~15년)·운영(60년)·해체(15~30년) 등 최소 100년을 넘는다. 원전 수주 결정 자체가 '100년의 믿음'을 전제로 한다는 의미다. 해외에 원자로를 판매하는 차원이 아니다. 첨단 기술력과 국가간 신뢰를 토대로 한다.

원전 수주 자체가 국가 경쟁력의 척도다.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수주를 통해 원전 수출국이 된 대한민국은 지난해 24조원 규모의 체코 두코바니 원전 건설 사업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헐값 논란 등은 과거의 서사다. '신뢰'의 과정이 현재와 미래의 스토리다.

 

10여년의 수주 과정에 이후 원전 건설은 최소 10년짜리 대규모 인프라 프로젝트다. 고용 창출은 물론 건설, 전자, 기계, 재료 등 여러 산업의 연관 효과가 발생한다. 운영 과정에선 기술력 향상과 관련 산업 발전을 촉진한다. 체코를 거점으로 유럽의 새로운 생태계가 만들어진다.

# 운영이 종료된 원전은 해체 과정을 거친다. 원전 해체는 고난도 작업이다. 방사성 물질의 안전한 처리와 복잡한 기술을 요한다. 건설 기간(10~15년)보다 해체 기간(15~30년)이 더 길다. 당장 눈에 띄는 것은 안전이다. 환경도 당연하다. 이와 함께 고려할 게 산업적 기회다.

해체도 건설 못지 않는, 아니 더 중요한 산업이다. 원전 해체와 폐기물 관리는 미래 에너지 산업의 핵심 분야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50년까지 약 500여 개의 원전이 해체될 것으로 전망된다. 수주·건설의 강자 '팀 코리아'는 이제 해체와 그 이후를 책임져야 한다.

여기 약점이 존재한다. 해체의 노하우는 쌓여가는데 폐기물 관리 경험은 더디다. 2005년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을 뺀 채 중·저준위 방폐장 특별법을 만들며 한숨 돌렸지만 20년이 지났다. 중·저준위는 과하게 좋고 안전한 시설에 안치되고 있는 반면 고준위는 임시 시설에 대기중이다.

10만년 격리를 목표로 하는 고준위 방폐장의 경우 부지선정(10~20년), 설계와 인·허가(5~10년), 건설(5~10년), 시험 및 운영 준비(5~10년) 등 만드는데 40년이 걸린다. 당장 하루 이틀 늦는다고 달라지겠냐 하지만 40년뒤, 100년뒤 돌이켜볼 때 아쉬워할 수 있는 하루일 수 있다. 원전 전주기에 대한 고민은 미래에 대한 책임이자 미래에 줄 수 있는 노하우의 축적이다.

 
수주에만 10년 걸린 체코원전…수십년 먹거리 된다
 
②체코 사례로 본 원전 수주 성공 노하우


24조원 규모의 체코 신규 원전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은 하루 아침에 성사된 일이 아니다. 체코 정부는 한국을 선정한 배경으로 △가격 △품질 △납기 준수 등 세 가지를 꼽는다. 이를 증명한 게 한국이 처음으로 수출한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이다.

2009년 이명박 정부 때 수주한 바라카 원전은 2018년 3월에 1호기가 준공됐다. 준공식엔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했다. 문 대통령은 2018년 11월엔 체코 총리를 만나 UAE 원전의 납기 준수를 예로 들며 체코 원전 세일즈에 나섰다.

 

그전에 체코 원전 참여 의향을 공식화한 건 박근혜 정부 때다. 2015년 3월 체코를 순방한 박근혜 대통령은 체코가 추진하는 원전 사업에 지분 참여 의향을 밝혔고 같은 해 12월 한-체코 원전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정권과 무관하게 약 10년에 걸친 노력 끝에 얻은 성과인 셈이다.

체코 두코바니 원전 건설사업은 2029년 착공, 2036년 시운전이 목표다. 건설 기간보다 수주 과정이 더 오래 걸릴 정도로 신중한 이유는 원전이 준공으로 끝나는 사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체코 입장에선 현지 공급망 구축 등 현지화도 고민해야 하고 제 3국 공동진출 등 협력 가능성을 타진해야 한다. 원전의 유지·보수 등도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한국이 지난해 7월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후 같은 해 9월 체코와 원전 건설에서 인력 양성, 폐기물 관리에 이르는 전(全) 주기 협력 협약을 맺은 것도 이 때문이다. 체코 현지에서 만난 원자력 관련기관, 원전 납품기업, 원자력 학계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신규 원전 프로젝트를 바라봤다.

 2009년 첫 단추 꿴 두산스코다파워…현지 공급망 기업들도 낙수효과 기대

<사진 :뉴스1>



체코 원전 수주전의 공신 중 하나로 꼽히는 두산스코다파워는 수주를 위해 오래 전부터 기반을 닦았다. 체코 스코다그룹의 발전설비 전문 업체였던 스코다파워는 2009년 두산그룹에 인수(지분 100%)됐다.

두산스코다파워는 두코바니 원전에 증기터빈을 납품할 예정인데 체코 정부가 요구하는 현지화율에 톡톡히 기여했다. 1000명에 이르는 직원 중 한국인 근무자는 법인장 등 세 명에 불과할 정도로 현지인들에겐 '자국 기업'이란 인식이 강하다.

두산그룹은 두산스코다파워를 유럽 원전발전 수주의 핵심 거점으로 키우기 위해 두산에너빌리티 발전기 기술도 이전하기로 했다. 발전기는 터빈의 회전 에너지를 전기 에너지로 전환하는 기기로 기술이전이 완료되면 두산스코다파워는 2029년부터 발전기를 자체 생산할 수 있다.

임영기 두산스코다파워 법인장은 "유럽에서 원전 건설 수요가 높아지면서 발주가 계속 나올 거고 이번 체코 수주는 교두보가 될 수 있다"며 "유럽 내 오래된 원전들은 러시아가 건설한 경우가 많은데 두산스코다파워를 중심으로 유럽 내 원전 개보수 수요에도 대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국수력원자력과 원전 기자재 공급 계약을 맺은 체코 아마튜리 그룹(Armatury Group)은 이번 신규 원전을 시작으로 원전 사업 비중을 늘려갈 계획이다. 아마튜리 그룹은 원전에 필요한 다양한 직경의 배관용 밸브를 공급하고 있다. 현재 원전 부문은 유지·보수 사업에서만 매출이 발생하는 상황이다.

리보 크레멜(Libor Kremel) 아마튜리 그룹 가스·수소·발전 사업부문 이사는 한국의 수주와 관련 "현지 공급망을 최대한 활용할 것을 기대한다"며 "과거 체코는 원자력 부문에서 체계적인 공급망을 갖췄지만 최근 몇 년간 업계가 정체되면서 많은 전문가들이 떠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슬로바키아나 최근 건설된 다른 유럽의 원전은 상업운전 개시가 계속 미뤄지고 있다"며 "우리는 초기에 발표된 일정이 꼭 지켜지길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원전 박사 인력 양성도 맞손…방폐장까지 전주기 협력

 

학계 차원에서도 한국과 원전 협력은 과거부터 미래까지 이어지는 장기 프로젝트다.

카렐 카토프스키(Karel Katovsky) 체코 브루노공대 기술대학 부교수는 "2017년부터 우리는 한국전력국제원자력대학원대학교(KINGS)와 협력하고 있다"며 "지금까지는 석사 과정 수준에서만 협력해왔지만 앞으론 연구개발과 박사 과정에서 더 많은 협력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가까운 미래에 석탄화력발전소들이 폐쇄될 예정인데 지금 새로운 원전 건설을 시작하지 않으면 10~15년 후에는 우리의 에너지의 약 1/3을 수입해야 할 수 있다"며 "전체 전력 생산 중 원자력 비중을 약 50% 수준으로 안정화하는 것이 목표"라고 덧붙였다.

원전의 마지막 생애주기인 방폐물 관리 부문에서도 협력은 이어진다. 지난해 9월 한국원자력환경공단은 수라오와 방폐물관리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오는 3월 본계약이 체결되면 두 기관은 연구용 지하연구시설(URL)을 포함한 방폐물 처분시스템을 공동연구할 예정이다. 체코는 현재 블코프(Vlkov) 지역에 URL을 갖춰 한국보다 앞선 상황이다.

루카스 본드로비치(Lukas Vondrovic) 체코방폐물관리기구(SURAO) 대표는 "한국과 협력을 아주 기대하고 있고 연구 주제인 저장소 운영이나 심지층 처분 등에 관해서도 언제든 논의할 준비가 돼있다"며 "체코 블코프 지역의 URL 심층 연구도 함께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100년동안 벌어들일 운영비·수리비·인건비만해도 수백조원"

③UAE바라카 원전을 통해 본 '운영'과 '관리'


탄생부터 죽음까지 100년 동안 얼마의 돈이 필요할까. 생명 연장에 따른 보편적 인류의 얘기가 아니다.

가동부터 영구 폐쇄까지 원전 '활동기'에 해당하는 기간에 해외에 지은 'K-원전'이 벌어들일 수 있는 액수에 대한 궁금함이다. 운영비, 관리비, 유지·보수비뿐 아니라 리모델링비까지 고려하면 최소 수백조원에 육박한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전력업계에 따르면 원전 2기 기준 60년간 예상되는 운영 매출은 66조원에 달한다. 다른 나라에 비해 전력 판매단가가 저렴한 국내 기준으로만 해도 이정도다.

통상 해외 원전 수주·건설에는 수십조원의 경제적 이익이 발생하는데 원전 운영·관리와 유지·보수는 최소 80년동안 수백조원을 기대할 수 있다. 긴 호흡으로 ,오랫동안, 시시때때로 돈이 된다는 의미다.

최근 원전의 설계수명은 60년이다. 여기에 10년에서 20년의 추가 운영을 허가 받으면 최대 80년까지 원전을 가동할 수 있다.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는 지난해 Turkey Ponint 3, 4호기의 계속운전을 각각 2052년 2053년으로 허가했다. 미국서 80년동안 원전을 사용할 수 있는 첫번째 사례로 기록됐다.

한국이 자체개발한 수출형 원전인 APR1400 4기(5600㎿)가 상업운전을 시작한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의 경우 한국전력공사가 주계약자로 한국전력기술, 두산에너지빌리티, 현대건설,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원자력연료, 한전KPS 등이 사업 전반에 걸쳐 참여하고 있다.

'Team Korea'로 묶인 이들은 △지분투자 △장기 설계 및 유지 △원전연료 등 원전 운영·관리 영역에서 발을 넓히고 있다. 실제 한전은 2016년 에미리트원자력공사(ENEC)와 투자계약을 체결하고 UAE 원전을 운영하는 현지법인 지분의 일부를 확보했다. 계약기간 60년동안 안정적인 전력판매 매출이 기대된다.

<사진 : 머니투데이>



또다른 매출은 △유지·보수 △인력 공급 △긴급 복구 △설비개선 등 다방면에서 일어난다. 주기적으로 교체해야 하는 변압기, 원자로 냉각재 펌프, 밸브 등 원전 건설에 참여한 업체가 보유한 기술력을 원전 폐쇄시까지 계속 활용할 수밖에 없다. 조그마한 부품도 '억원' 단위니 관련 업체의 인건비까지 포함하면 경제적 가치는 더욱 증가한다.

원전업계 관계자는 "10년 주기로 교체해야 하는 원자로 냉각재 펌프는 100억원에서 150억원, 15~20년 주기로 교체해야 하는 변압기도 100억원이 넘는다"며 "안정적 원전 관리를 위해서도, 갑작스런 고장이 발생했을 때도 결국 기술을 보유한 기업에 요청할 수밖에 없고 비용은 주기적으로, 시시때때로 발생한다"고 말했다.

이제는 원전 수출국인 대한민국이지만 1970년대 우리나라가 도입한 중수로, 경수로 원전의 경우 캐나다 캔두 에너지(Candu Energy), 웨스팅하우스 등 당시 원전 건설에 참여한 해외 기관·기업의 도움을 지금도 받고 있다. 사안마다 개별 계약이 이뤄지며 3-4년의 계약기간이 설정되기도 한다.

아울러 한수원은 국내 원전의 안전성과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국내 원자로를 공급한 각 노형 설계자와 해외 원전 운영자들로 구성된 '소유자그룹'(Owners Group)에 가입돼 있다. 미국, 캐나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하는 3개의 소유자그룹에서 활동 중인데 고리, 월성, 한울 원전 등에 이들의 기술력을 활용하고 있어서다.

국가별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는 전세계 원전시장서 상황에서 이같은 소유자그룹의 활동은 새로운 경쟁자의 진입장벽을 높이고 자신들의 이익을 공고히 하는 구조로도 작용한다. 한수원이 이들과의 접촉면을 넓히면서도 우리 기술력을 강화하고 더욱 발전시키려는 이유다.

원전업계 관계자는 "고장난 자동차 수리와 기본적인 부품 교체도 제조사를 비롯해 협력업체가 전담하면서 폐차할때까지 매출이 발생한다"며 "해외서 원전 수주-건설-운영·관리 경험이 있는 우리나라도 부품 공급, 인력 교육, 긴급 수리·복구, 설비개선 등의 영역에서 한 세기에 걸쳐 경제적 이익을 달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선도적 원전 기술 개발과 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한 정부 예산도 안정적으로 뒷받침돼야한다. 올해 산업통상자원부 원전 관련 예산은 4889억원으로 전년보다 100억원 가량 증액됐다.

다만 △원자력핵심기술개발(R&D) △원전 안전부품 경쟁력 강화 기술개발(R&D) 등 R&D 예산은 전액 삭감됐다. 4세대 원전인 소듐고속냉각로(SFR)를 설계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예산도 70억원서 7억원으로 90% 삭감됐다. 원전산업 생태계 성장과 사업구조 개선을 지원하는 원전산업성장펀드 또한 정부 출자규모가 국회 예산 논의 과정에서 50억원 삭감됐다. 에너지 정책만큼은 여야를 떠나 흔들림없는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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